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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무생물에게 고하니,

모둠초밥 2025. 2. 6. 07:06

이어집니다.

이해되지는 않는다. 내 앞에 움직이는 무생물이, 모든 것이 전자회로일 뿐인 기관단총이라는 물건 따위가,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피와 살이 생길 수 없는, 그런 소모품 따위가. 내 앞에 생명체를 연기하고, 그들 사이에서 살아가려 한다는 것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생각도 없다.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제 보다 무지한 생물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리 배워왔으니까.

딱히 로봇, 기계 따위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절망, 증오, 분노와 슬픔, 자책 등...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줄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 따위, 알게 뭔가. 하지만, 어째서일까. 네 눈앞에 너는 그저 소모품 따위가 아니었다, 너에게 관심이 생겨나간다.

그러니까,

나와 조금만 놀아줬으면 해.

소모품 따위가 지성체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너도 빌리버의 생각 따위 알지 못할 거다. 이게 어떠한 감정의 미소일지. 당신은 알까.

"뭐, 다를 게 있겠나요. 소소한 것도 전부 꿈이 되기 마련이죠. 지성체도 다를 것 없어요. 무언가를 찾는다거나~ 어떤 것이 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면 뭐겠나요."

메모리 데이터, 손실, 기억의 단편, 오류. 너에게서 나온 말들은 전부 빌리버에겐 꽂혔다. 짧은 고민 끝 내린 결단은, 흥미가 생긴다. 그것뿐. 너에게 감정이 없더라도. 데이터의 손실에 인간의 준하는 감정을 담아준다면? 그러면 네가 말하는 "혼란" 이란 것을 느끼는 너를 본다면? 그래, 재미가 없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한번 해보고 생각해야지. 일단 해보면 뭐든 되겠지.

너의 당연하면서도 이질적인 그 표정을 바라본다, 일부러 일지, 그저 당연한 이치인지. 너와 눈을 지그시 마주한다. 친절하고 은은한 미소는 덤. 너는 이런 표정도 이해할까. 로봇은 표정을 읽고 감정을 알 수 있을까.

네가 말한 그 목표. 그 목표는 흥미를 가지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빌리버는 꿈을 거창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애당초 자신이 꾸었던 꿈도 언제나 작고 소박했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라... 그것도 꿈일 수 있죠! 작은 목표는 꿈이 될 수 있다고요. 있잖아요,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인가요? 데이터의 손실이 있더라도 그저 기관단총인 레이즈양에게는 상관이 있을까 해서요. 아, 물론! 레이즈양의 꿈을 비관할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이런 건 응원한다구요!"

방긋, 웃는다. 진심이라는 것 마냥. 딱히 진심은 아닐 테지, 오히려 비소일수도 있다. 너는 이것을 이해나 할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도와줄게요. 그 기억의 파편을 찾는 것. 대신, 나에게도 이득이 있어야만. 서로 윈윈, 좋잖아요? 아, 물론 강요는 아니에요!"

빌리버는 그리 말했다. 이것이 어떤 감정을 품고 하는 말인지. 친절하게 보이겠지, 선심인 것 같고. 너 같은 무생물이 아니더라도 그저 선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단 하나, 확정 지을 수 있다. 이건은 선심이 아니다, 단순 연민으로 건네는 따스한 손길이 아니다.

너의 말을 가만히 듣는다. 웃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신의 목표를 뱉은 것은 분명히 안드로이드의 입장인데, 지금은 그저 부수적인 기능이라니. AI도 모순이란 것을 제시하는 걸까.

"음. 그렇죠! 레이즈양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니까요."

자신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아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혹시 모르지, 저 말이 조금 더 좋지 않은 말일지도. 물론 감정이 없는 너에겐 상관이 없겠지만.

"감정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감정 따위... 음, 네! 난 그래도 레이즈양의 나머지 2%는 사람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2% 정도는 사람의 감정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별로 안되잖아요!"

그 2%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이라 덧붙여, 네가 무얼 하든 딱히 상관은 없다. "감정"을 가지는 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그것이 기계의 탄생으로 뒤따라오는, 온 인류가 두려워하는 그것을 현실화시키더라도.

"뭐, 사람이란 게 다 그렇죠.(아니다) 남이 좋은 건 못 보는 게 지성체라더라요.(아니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라잖아요?(아니다)"

악인은 그리 말한다. 사람이란 게 자 그렇다, 남이 행복한 것은 못 본다. 악인들의 서사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다. 난 행복할 뿐이었는데 저들이 나를 망쳐서. 그것은 절대 정당화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이 악인의 말은 그저 합리화의 불과했다.

너의 답을 듣는다. 내가 느끼는 재미를, 전부 빠짐없이 원한다고. 그 답이 꽤나 마음에 든 것일까. 손으로 입을 잡고 옅게 큭큭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웃음을 참는 것처럼. 한 손으로 마른세수, 다시 평소와 같은 미소로 너를, 이 악인은 다시 마주한다.

"그래요,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너는 이 악인이 선인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겠지. 그 정도는 악인도 알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AI이며, 자신은 악인의 면모를 내비쳤으니까. 그 무지한 AI에게 악인의 사상을 주입한다면 그 얼마나 재밌겠는가.

알려 줄 자신이 있다. 지금 웃는, 이 별것 아닌 것까지 전부 다. 원한다면 건네줄 것이다.




"그야, 아이폰이 더 친근하니까요! 생각해 봐요, 한 뼘 두 뼘이 더 쉽잖아요! 정말이지~ 로봇이라 이해 못 하는 건가요?"

이해 못 한 것... 쯤은 알겠다. 참 나... 이게 로봇인 건가...

"아니! 그런 걸 아는 사람은 소수라고요! 군대를 다녀왔다거나, 직업군인이라거나, 이 분야에 전문가라거나, 그것들이 아니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건 모른다고요!"

일단 자신은 그렇다. 그래도 일반화... 는 아니지 않나? 일반화는 아닐 거다. 너의 작은 기계음에 고개를 슬 갸웃. 신기하네.라는 생각만 들었다.

"원치 않는 것의 예시들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 악인에겐 예깃거리들이 너무 많았을지도. 이내 악인은 입을 열어 말을 뱉는다.

"작게 예시를 들자면... 자신이 사랑한 이들의 죽음을 자신이 증오한 범인이 진범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나, 자신이 평생을 믿어왔던 것이 한순간에 거짓이란 것을 알았을 때, 음.... 또 말하자면... 자신이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향해 나아간 것이, 되려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는 것을 깨우쳤을 때."

악인은 네가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뱉어나간다. 어쩌면 예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있는 일을, 자신이 겪은 일을 뱉어 냈을지도.

"너무 어렵나요? 간단히 말하자면 양치했더니 그 칫솔이 다른 사람의 칫솔일 때? 정도려 나요~"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 다시 인간의 얼굴로 돌아오니 조금 놀란 듯 깜짝.(왜지...)

"네, 좋아요. 레이즈양의 본체를 봤으니 그 정도 등가교환쯤이야. 삶을 살다 보면 가끔은 좋지 않은 정보들도 있어요. 범죄현장을 알게 되면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위진 다던 가. 알 필요가 없고, 알기도 싫은 정보들이 마구 쏟아지면 생물체는 혼란스러워하거든요. 예시는 방금 말한 것과 같고요. 이해가 안 되지만 생각은 해봐요. 누군가에겐 원하지 않는 정보가 있을 수 있거든요. 평생을 회피한 정보가, 알 필요 없는 정보가, 알고 싶지 않았던 결국 머릿속으로 들어간다면. 그건 그저 손해 보는 장사라고요. 생물체는 레이즈양처럼 모든 데이터를 쌓을 수 없어요. 필요에 의해 데이터를 지울 수도 없고요. 되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오래 보관하죠. 그러니 생물체에겐 되려 손해인 거예요."

악인은 그리 말했다. 너의 눈빛에는 그 무엇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을 악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악인도 결국 생명체, 너의 한점 떨림 없는 목소리가 어쩌면 생명체들이 칭하는 "호기심" 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에 가능성을, 이 악인은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