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의 마지막 예고장
가끔 있지 않은가, 그런 날.
컨디션은 따라주지 않고, 운도 나쁘고, 괜히 작은 것에도 괜스레 짜증만 나는 그런 날.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었다.
지난번 훔친 미술품도 헤르메스의 날개는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되는 일이 없었다. 그날따라 그냥 사람과 상종하는 것조차 싫었다.
화려한 쇼와, 우왕좌왕하는 경찰들. 평소라면 킥킥 웃으며 즐겼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그냥 모든 게 한심해 보였다. 따라오지도 못할 거면 방해 말고 조용히 있지.
그렇게 따낸 [밤하늘을 유영하는 고래]. 말 그대로 어두운 밤하늘을 유영하는 고래의 그림. 작가미상의 작품이었다. 이번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샤를, 불 꺼줘요."
"예, 도련님."
칠흑 같은 어둠 속, 헤르메스의 날개를 가진 보물은 빛이 날 지어니, 헤르메스가 다시 나타나는 날 헤르메스르의 날개를 찾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리라.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들은 헤르메스의 날개의 내려오는 전설. 그 전설을 나는 정말 싫어했다. 그 전설 하나 때문에 우리 가문이 이렇게 된 거니까. 범죄조직과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가문? 웃기는 소리. 해봤자 우리 집도 범죄집안인건 다를 거 없다. 밤하늘을 유영하는 고래마저 허탕이면.... ....솔직히 허탕일 것 같다. 응. 확실히. 그래도 해보긴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
........
.....
...........
어?
어둠 속에서 확실히 빛나는 헤르메스라는 단어. 헤르메스의 날개다. 확실히 헤르메스의 날개다. 드디어 찾았어. 드디어 찾았다고!
"Lady and Gentleman, Boys and Girls!"
"이곳에 모여주신 모든 신사, 숙녀 여러분.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보름달의 마술사, 대괴도 티어리스의 마지막 무대를!"
모든 건 일사천리였다. 모두가 보는 생방송. 그 녀석들도 보는 이 카메라 앞에서 밤하늘을 유영하는 고래, 헤르메스의 날개를 부쉈다.
"자! 어디 쫓아와 죽여보든지!! 잘 들어, 네 녀석들이 원하던 헤르메스의 날개는 더 이상 없어!! 내가 다 부숴버렸으니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거야. 이제 다 끝이야. 지금 보고 싶다. 가장 보고 싶다. 그 누구보다 보고 싶어. 탐정님을. 당신을.
"저 미친놈-... 이...."
"탐정님!!"
찾았다. 탐정님이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부모님보다 당신이 더.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당신이.
당신을 붙잡았다. 눈물이 났다. 참지 못할 것 같다. 어쩌지, 당신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아직 어린 나는, 아직 아직 나는.....
"야, 너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이거 안 놔?"
"탐정님, 저 다 끝났어요. 다 했어요. 제가 해냈다고요!"
"제가 해냈어요... 잘했다고 칭찬해 줘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수고했다고 위로해 줘요... 이제 행복해도 된다고 말해줘요..."
당신이 칭찬해 주면 좋겠어, 당신이 위로해 주면 좋겠어, 당신이 행복해도 된다 해주면 좋겠어.
"나 좀... 나 좀...."
당신이....
"나 좀 봐줘요......."
당신이 나를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
아.
무슨 표정이에요. 그건 무슨 표정이에요. 평소보다 더 차가운 표정은, 진심으로 혐오하는 그 표정은....
"... 아. 아... 죄, 죄송해요. 미안해요.... 미안... 죄송해... 요..."
입에서 나오는 건 사과뿐이었다. 가지 마요. 가지 말아 줘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다리를 잡고 엎드려 비는 것뿐이었어요. 제발요, 제발요. 제발...
".... 진짜 미쳤구나."
그대로 그런 나를 뿌리치고 당신은 떠난다. 안돼, 안 돼요. 나 좀 봐줘요. 가지 말아 줘요. 제발요. 난 이렇게까지 힘냈는데. 난 혼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냈는데. 난... 난 당신을 보면서 버텼는데.....
모든 걸 끝내고 부모님이 계신 해외로 나갔다. 해외로 나가 자취를 감추고 마술 공부를 했다. 그렇게 22살. 나는 다시 돌아왔다. 이제 모든 걸 잊었다. ..잊으려했다. 탐정님을 잊으려 했다.
.... 아.
탐정님이다. 친구분과 같이 카페에 가시는구나.
......
..... 따라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하아... 괴도 시절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따라오겠지... 여러모로 괴롭다.....
"아 맞아. 디텍, 티어리스는 지금도 못 잡은 거야?"
"그 괴도 녀석? 응. 경찰 측에서 엄청 찾았는데, 어떤 증거도 안 나오더라."
어라. 갑자기 내 얘기라. 당황스럽긴 한데... 일단 들어보자. 탐정님도 내 얘기를 하려나...
"정말? 너 엄청 잡으려고 했잖아. 아쉽지는 않아?"
"아니 뭐.... 사라지면 나야 좋지. 엄청 귀찮은 녀석이었거든. 그래도.... 조금 신경 쓰이긴 하네."
.....
"잘 사는지나 모르겠어. 뭔가 걱정된달까. ....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
....
우와. ..지금 당장 만나고 싶어. 붙잡고 싶어. 단둘이 있고 싶어. 당신을 보고 싶어.
"그래?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
지금이다. 기회야. 당신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야.
"....?"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레이디?"
".. 아... 예..."
"갑작스럽게 말 걸어서 죄송해요. 그렇지만 정말 아름다우셔서요. 괜찮으시면, 마술 하나만 보여드려도 될까요?"
"뭐.. 좋아요. 한번 해보세요."
"딱히 기대는 말아요. 간단한 마술이니까요. 이렇게.. 짠! 숙녀분께 드리는 장미입니다. 받아주세요."
이거다. 신기하다는 듯 놀라는 당신의 표정. 미소 지으며 꽃을 받아 드는 당신의 행동. 보고 싶었다. 괴도는 보지 못한 그런 표정.
이제 우린 처음 만난 거예요. 괴도와 탐정이 아닌 거예요. 이제 나는 괴도가 아니니까요. 당신이 싫어하는 그 도둑이 아니니까요.
괴도와 탐정이 아니니, 남자와 여자로, 사람과 사람으로.
제가 당신 한번 꼬셔볼게요. 기대하고 있어요. 내가 엄청난 마술을 보여드릴 테니까요. 나의 탐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