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히 ■■지어다ㅡ.
이어집니다.
"정말이지~ 그치만 무의식이란 게 있잖아요, 그 속 어딘가에서는 있지 않을까요? 뭐, 나는 뇌과학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네요. 여기서 논문을 찾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딱히 그런 거에 관심이 없거든요!"
악인은 말한다, 너에게는 없는 무의식을 운운하면서도 자신은 그 생명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기관단총이 악인의 꿈을 묻는다. 집요하게 묻는다. 답해주지 않는다면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듯. 악인은 생각한다. 그 소박한 꿈이란 것을. 자신이 꾸었던 그 소박한 것을. 그 꿈은 아주 오래전 사라져 버렸겠지. 악인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자신이 언제나 울 부 지르던 그 "소박한 꿈" 이런 것은 무엇일까. 악인은 그저 고민을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다였다. 악인의 꿈이란 무엇일까. 악인의 꿈. 악인은 처음부터 야망을 꾸었을까. 처음부터 악을 꾸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역시 아닐 것이다. 악인에게도 서사를 부여한다면 악인에게도 소박한 꿈은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은 악인에게 정당화만 시킬 뿐. 악인은 그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정당화할 마음이 있는 걸까? 정당화를 하더라도 제 과거를 들먹이면서까지 정당화를 할 이유도 없다. 포장을 벗긴 채로 건넨 너에게는 더더욱. 그러니 악인이 건네줄 말은 그저 진실일 뿐. 허나, 겉만 진실로 보일뿐, 그것이 진실일지 아닐지는 악인조차 모르겠지.
"내 꿈은~... 역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 달링이랑 말이죠! 뭐, 이 정도면 소박하지 않은가요? 아닌가? "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기. 그것은 과연 소박한 것일까. 그것은 생명체에 따라 다르겠지. 평범과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통계로 만들 수는 없겠지. 악인은 마치 평범과 행복의 정의가 무엇이겠냐는 듯 질문을 던진 것과 같았다. 악인의 기준에 평범과 행복이란 무엇일까. 과연 이것을 악인이 알고 있을까? 과연 악인과 행복이 공존할 수 있을까.
너를 빤히 본다.... 은은한 미소로 너를 본다..... 은은하게.............................
"세일즈의 정석은 모르겠고... 애초에 저는 그런 천한? 직업은 나랑 안어울린다니까. ...그거 진심도 아니잖아요. 애초에 로봇한테 진심이 어딨 어요. 레이즈양한테 사과받으면 엎드려 절 받기 같으니 관두죠 그냥..."
너의 형식적이고 이성적인 감정표현.......... 그.......... 아니다............. 딱히 악인에겐 상관없어 보이니 넘어가자!
"네. 역시 로봇이라 그런가 봐요. 정확히 꿰뚫네요! 이 정도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요? 난 딱히 예측이 가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로봇에 관심이 없었고. 근데, 레이즈양이면 뭔가 가능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악인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는다. 마치 네가 자신이 건넨 손을 잡을 것이라 확신한 듯. 그리고 너의 머리를 슬 쓰다듬는다.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어느 때보다 다정한 미소로 너를 바라본다. 수락을 해줘서 고맙다는 듯이.
네가 말하는 조건을 조용히 경청해 듣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
"잘 알았어요. 당연히 그 정도는 지키죠! 그럼... 나도 몇 가지만 지켜줘요. 첫째, 대표님들이 가장 우선순위인 건 당연하죠. 대표님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우선순위를 나로 둘 것. 둘째, 만일 꿈을 이룬다 하더라도 '가능한' 이 계약은 이어갈 것. 한 명만 만족해 끝내는 계약은 재미없잖아요? 아닌가? 마지막 셋째, 추후 감정이 생긴다면... 나에게 원망이란 감정을 건네지 말 것. 건네고 싶어도 꾹꾹 눌러 담아요. 남에게 분출해도 되고. 어때요, 어렵지 않죠? 이 중 하나라도 어길 경우... 레이즈양이 말한 위 조건을 깨더라도 무조건 내 말을 이행하기. 난 딱히 계약파기를 원하지 않아서요!"
악인은 제안한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하지만 너에게도 말도 안 된다는 판단이 나올까? 딱히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속내는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장난감에 사용 전 주의사항 태그.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고 장난감 상자를 버린다. 악인도 그와 비슷한 부류. 원래였다면 그 장난감 상자는 보지도 않고 내다 버리지. 하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빼앗겠다는 말을 들으면? 악인은 그것 조차 지키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주의사항을 꼼꼼히 읽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지킬 선인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악인은 악인. 주의사항을 교묘히 이용해, 도로 빼앗으려 하는 사람에게 자신은 지켰다는 말을 해 빼앗지 못하게 할 수 있지. 그것은 악인의 당연한 수법. 그러니 아무리 나빠보이더라도 주의사항을 지키니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악인 아니겠는가.
"전 당연히 좋죠. 계약 성립이에요."
당신의 손을 슬 들어 올려 짧게 입맞춤. 이 계약의 계약서에 찍는 지장이라는 듯이. 백지에 붓으로 첫 자국을 남긴다. 짧지만 굵게, 찍어 누른다. 마치 이것은 절대 지워질 수 없는, 지워질 리 없는 자국이라는 것처럼. 그 자국을 남기고 만족한듯한 미소로 자국이 남겨진 곳을 바라본다.
"모험." 그 단어는 어쩌면 유흥을 좋게 포장한 포장지에 불과하겠지. 적어도 악인에게는. 너에게 심장을 준다는 악인은 서로의 목표를 위해 같은 노란 벽돌길을 걷는 도로시라기에는 그 목적은 서로의 목표가 아니었고, 거대한 기계 뒤에 초라한 자신을 숨긴 비겁한 사기꾼 마법사라기에는 거대한 기계가 아닌 그저 작은 가면으로 자신을 가릴 뿐이었고,
정의롭지만 악이라는 누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끝끝내 악당으로써 남아버린 불쌍한 서쪽 마녀라기에는, 더 이상 누명을 벗어내지 못하게 된 것을 넘어 자신의 손으로, 자의로 악에 손을 대어 악당을 자처하였다.
그러니 악인은 도로시도, 사기꾼 마법사도, 서쪽 마녀도 아닌, 이 어떤 서사를 부여하며 정당화해서는 안될, 정당화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악인에 불과하다.
"음. 모욕이 아닌 건 맞죠. 하지만 누군가에겐 불쾌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것! 알겠죠?"
"....음.... 연인끼리 하는 스킨십과 키스는 서로 합의가 된 것이니까요! 합의가 아니라면 불쾌해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런 느낌이죠. 합의되지 않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은 불쾌하지만, 합의가 되고 의식해 한 행동은 불쾌하지 않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그래, 이 귀찮은 것이라도 알려준다. 그것으로 재미만 있을 수 있더라면.
"맞아요, 아무래도 생명체는 물건 마냥 폐기처분하기엔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생명체에게는 안 좋은 기억이 더 오래 남아요. 트라우마라고 알죠? 일종에 생존본능이래요. 좋지 않은 일을 오래 기억해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대처를 할 수 있게 하죠. 어찌 보면 오류는 아니라는 뜻이죠!"
너는 모르겠지. 이 주변엔, 이 세상엔 악인이 들끓고 있다. 너의 앞에서 누군가를 가스라이팅하며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악인과는 다른 유형에 악인들도 많지. 비윤리적인 실험을 서슴지 않는다던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서 쾌락을 느낀다던가, 바라보기만 하면 정의로움이 보이나 자신의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던가, 더 넓게 본다면 그저 장난치길 좋아해 남에게 사소한 피해를 끼치는 것 또한 악인으로 보이겠지.
악인은 이제 그 하얀 종이를 쥔다. 주의사항을 교묘히 피하면서, 하얀 종이 위에 먹칠을 한다, 붓과 연필을 사용해 선을 긋고 가위와 칼을 사용해 조각낸다. 종이가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악으로 물들여. 네가 인지할 수 없도록 악을 쥐어줘, 네가 인지할 수 없을 때 너로 인해 누군가를 무너뜨리리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한 하느님이 있었다. 그러니 너에게도 그런 하느님이 있겠지. 하지만 이브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선악과를 먹었다. 그곳엔 이브를 꼬드긴 뱀이 있었다. 그래서, 이브는 하느님과 뱀 중 누구의 말을 들었는가? 이브는 결국 뱀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 너도 악인의 말을 들었겠지. 그러니 그 최후도 함께하자고.
남쪽마녀가 말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네 안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악인은 누구인가. 도로시도, 사기꾼 마법사도, 서쪽마녀도 아니다. 그리고 착한 남쪽마녀와는 거리가 한참 멀고. 너의 심장이 쿵쾅댄다고 하더라도, 그 미치도록 쿵쾅대는 심장의 공명을 듣는다 하더라도 이것이 사랑이라 해주는, 사랑의 감정은 네 안에 있다 해주는 남쪽마녀가 없다면? 이 공명소리를 듣는 너는 이것이 과연 사랑의 감정임을 알아챌 수 있을까?
그럼에도, 결국 본질은 양철 나무꾼. 깡통인간에 불과하다. 그저 타인과, 생명체와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인 감정이라는 기준이 추가된 것일 뿐. 홀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또한, 악인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태엽을 뜯고, 실을 묶어. 결국 감정을 가지더라도 너의 심장에 절망이라는, 후회라는 크나 큰 감정을 갑작스레 눌러 담아. 그 한 번으로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면, 악인은 그것만으로도 웃음을 지을 것이다. 2%. 고작 그 적은 가능성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그 순간마저 악인은 웃음을 지을까.
네가 무너지는 그곳에서 무슨 말을 외치더라도, 어떤 말을 부르짖더라도, 그 악인은 그저 컬렉션 하나를 채워나갈 뿐일 거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움직여봐.
태엽이 다 풀리더라도, 이 무대에서 내려와 보아라. 너 또한 악인의 컬렉션 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그 태엽을 감아줄 사람을 다시 찾아보아라. 당당히 자신의 태엽을 홀로 감아보아라. 네가 태엽 없이 움직이는 몸이 된다면, 어쩌면 그 악인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지도 모르지. 양철 나무꾼과 모험을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 서쪽마녀를 물리쳤다. 그런 서쪽마녀보다 더욱 악한 이를 물리쳐 심장을, 사랑이라는 감정을 쟁취해 보아라.
이 또한 너의 시련. 생명체라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다가 올 크나 큰 시련. 어쩌면 악인과 만나 부딪히는 이 시련부터가 네가 생명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아닐까?
그래, 무대에 서는 건 하나가 아닌 둘이 될 수도 있지. 이참에 심리전략게임을 해보는 것도 악인에겐 꽤 괜찮은 도파민일지도. 어쩌면 네가 악인을 휘두를 수 있을지도. 관객석에 앉아 박수만 치는 그 악인을 꼬드겨봐, 혹시 모르지. 그 악인은 그것에 홀려 너와 함께 자신의 무대에 서 너와의 심리전을 나눌지도. 그 또한 악인에게는 즐거움이니. 무생물 주제지만, 생각보다 재밌는 꾀를 지어내는구나.
나에게 즐거움을 줘, 도파민을 터뜨려줘, 너의 탐욕을 끝까지 쥐어짜 내. 이 심리전에서는 누가 이길지 모르겠지만. 그 2%에 가능성을 가지고, 한번 덤벼 봐.
자, 이제 패는 낸 거니. 게임을 시작해 보자.